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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가을이미지

by 서리야 2014. 11. 14.

 

 

 

시간이 상처를 아물게 해준다고 하는것은 정말 이었다.

하지만 그건슬픔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삭힐 수 있게 된 것일뿐

마음 속에 뻥 뚫린 구멍이 메워진 것은 절대 아니다.

 

 

 

 

 

 

 

 

오래전에 당신을 본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뱃속에 과일 씨눈처럼 박혀 있었을때도,

다섯살 때에도, 열두살 때에도.

사랑은 그렇게 모여들어서

어느날 갑자기 딱 마주치는 것 인가봅니다

 

 

 

 

 

오늘도 미처 다 부르지 못한 너의 이름을 부르며

유리창 밖에서 부서지는 빗물을 바라본다.

네 앞에선 항상 웃을 수 밖에 없었던 옛일을 회상하며

나지막이 불러보는 노래는 빗방울 소리에 스며든 듯 들리지 않는다.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망설일 수도 없는 짧은 어둠의 시간에

홀로 남을 때도 형언할 수 없는 번뇌와 무섭게 싸워야 했다.

잠들지 못하는 날에는 백지 한 장을 눈 앞에 놓고

마음껏 그리워하며 쓸쓸해 했다.

 

 

 

 

 

 

허전하지요, 산다는게

혼자서 쓸쓸하고 둘이서 쓸쓸하고

만나서 허전하고 헤어져서 허전하고

가을에서 다시 가을이 올 때 까지 쓸쓸해서 혼자 마시고

사랑조차 쓸쓸해서 다시는 사랑하지 않고

질긴 외로움의 뿌리 하나로 저 시끄러운 세상을 바라보며

쓸쓸하게 웃지요. 바람 속에 서 있는 한 그루 대나무처럼

오늘도 시퍼렇게 살아남아서.

 

 

역시 사랑을 통해서 자기를 표현할 때 외엔 없었다.

그러나 넋을 잃을 정도로 반한 사람과 똑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서로를 이해한다 해도 고독은 있었다.

아무리 깊게 빠진 사랑일지언정, 틀림없이 고독은 있었다.

그런데 겁도없이 나는 죽을 때까지

누군가를 사랑하리라고 떠들어대고 있다.

너를 잊으려다 나는 나를 지워버렸다.

제일 먼저 행복이란 감정을 잊어버렸고

입에서 웃음이 지워졌으며 멀쩡히 두 다리는 있었지만

나는 길을 잃어 세상을 헤메고 있었다.

그렇게 나를 지우니 그리움만 남았다.

오히려 네 기억만 더욱 더 선명해져 버렸다.

너를 그리워하는 일 이젠 익숙해서 내 삶의 일부분이 되어버렸다.

내가 정말 두려워하는건 네가 돌아오지 않을거라는 사실보다

그리움마저 지워져버려 두번 다시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게 될 내 자신이다

 

기억은 공기 중의 습도와 일조량의 바람의 속도를

프레임 속에 넣고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당신과 나의 기억을 가두어 버리지.

 

함께 했던 사람은 사라지고,

풍경은 늘 그 자리에 남는거야.

 

가장 마지막까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

변하는구나 세상이 변하듯 너도 나도 하나같이

엊그제 같던 날들이 이제는 몇주전이 되고

몇달전이 되더니 어느덧 몇년.

후회나 미련이라는 단어를 모르고 살았던 그 날

작은 것에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울고 웃을 수 있던 순수한 마음

 

다짐했던 일들을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나는 또 한번 잊고 살았다.

모든것들이 새삼스러울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은것처럼

 

찬바람이 나의 볼을 따갑게 스쳐갈 때,

그것을 그대로 느끼는 것처럼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을 그대로 느껴요.

 

우리가 공유했던 것들을 상기시킬 때,

아픔은 내가 뒤집어쓰고 있는 딱딱한 껍질을 뚫고 단번에 심장에 이르러.

우리는 어쩌자고 그렇게 많은 것들을 함께 나누었을까.

그 순간은 행복했고 모든 추억은 지나고 나면

아름다워지는 거라고는 제발 말하지마.

어쩌면 나는 나에제 주어진

삶의 행복을 모두 다 소모해버린 건지도 몰라.

너를 만난 이후부터,

나는 늘 우리가 서로를 알지 못했던 시간들을 생각하면서

두려움에 떨었어.

어째서 우리는 그 이전에도 존재할 수 있었던 걸까?

하지만 그 두려움은 한편으로,

우리가 두 번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에서 기인했던거야.

이제 우리는 헤어졌지만, 그래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서로의 존재를 영원히 지울 수 없겠지.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가 서로 만나기전에

얼마나 외로웠는지에 대해 알아버렸으니까.

몰랐으면 좋았을걸.

사람도 나무처럼 일 년에 한 번씩 죽음같은 긴 잠을 자다가

깨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깨어나 연둣빛 새 이파리와 분홍빛 꽃들을 피우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았다.

어렵게 멀어져간 것들이 다시 돌아올까봐 나는 등을 돌리고 걷는다.

추억의 속도보다도 빨리 걸어야 한다.

이제 보여줄 수 있는 건 뒷모습 뿐,

눈 부신 것도 등에 쏟아지는 햇살 뿐일 것이니.

 

기억의 자리마다 발이 멈추어선 줄도 모르고

예전의 그 자리로 돌아온 줄도 모르고

 

내가 아프지 않기 위해 시작한 그 방법은 점점 마음이 상하지만

겉으로 웃을줄 알게되고 기분 나쁘지만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한다.

그러면서 나 자신에 대해 많은 후회를 하게되고 나는 뭔가하는

회의가 들게 되지만 그 회의와 후회가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는

조금은 기분 나쁘지만 웃어줄 수 있고 마음 상하지만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으로 남의 마음을 헤치는 것보다

어쩌면 더 나을 수 있다.

그런적이 있었다.

이 세상의 주인공이 나였던 시절 구름 위를

걷는것처럼 그 느낌이 좋았다.

거기까지 사랑이 가득차서 찰랑거리는 것 같았다

한 남자가 내게 그런 행복을 주고 또 앗아갔다.

 

지금 내가 울고 있는건 그를 잃어서가 아니다.

사랑. 그렇게 뜨겁던게, 흔적도 없이 사라진게,

믿어지지 않아서 운다.

 

서로 멀어지고 사라져버린 사람과의 추억

그 상실감만큼 큰 괴로움도 없다.

뽀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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