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李成桂)가 위화도(威化島)에서 회군하였을 때, 뒤에 조선 태종(太宗)이 된 이방원(李芳遠)이 포은의 뜻을 떠보려고 읊은 《하여가(何如歌)》에 답하여 부른 것이다.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실려 있는 전문은 “이 몸이 주거주거 일백번 고쳐 주거, 백골이 진토되여 넉시라도 잇고 없고, 님 향 일편단심이야 가싈 줄이 이시랴.”이며, 《포은집(圃隱集)》에는 한역(漢譯)되어 “此身死了死了 一百番更死了 白骨爲塵土 魂魄有也無 向主一片丹心 寧有改理也歟.”라고 실려 전한다.
종장에서 작자는 "님 향(向)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라고 노래하고 있는데 이미 기울어 가고 있던 고려이지만 끝까지 굳은 결의를 지키려는 유학자의 자세와 두 왕조를 섬기지 않는 작자의 일관된 신념이 잘 나타난 부분이다.
《해동악부(海東樂府)》와 《포은집(圃隱集)》에 다음과 같이 한역되어 전한다.
此身死了死了(차신사료사료)
一百番更死了(일백번갱사료)
白骨爲塵土 (백골위진토)
魂魄有也無 (혼백유야무)
向主一片丹心(향주일편단심)
寧有改理與之(영유개리여지)